[도서]조한진희, <질병과 함께 춤을>



우리는 수많은 질문을 품고 모임을 진행했다. 이를테면, 현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조금씩은 아프고 만성질환 하나쯤은 개성처럼 달고 산다. 그럼에도 모두 건강 중심 세계의 눈으로 자신의 몸을 볼 뿐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세상에 아픈 몸들이 이토록 많은데, 왜 건강한 사람의 눈으로 자신의 아픈 몸을 보면서 ‘부족'하고 ‘열등’하다고 낙담만 하는 것일까?

그리고 사회는 우리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서, 여기까지는 질병이고 저기까지는 건강이며 거기부터는 장애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종종 우리 몸 안에서 질병, 건강, 장애는 잘 구분되지 않는다. 이것을 과연 언어화할 수 있을까? 사회는 아픈 사람들이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의료적 치료가 필요한 것 이외에, 인간답게 생존하고 꿈꾸고 욕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왜 물어주지 않을까? 우리의 이 ‘문제적 아픈 몸'은 건강 중심 사회에서 ‘실패한 몸'이 아닐 수 있을까?


더 많이 읽고, 쓰고, 말할수록 우리는 질문 속에서 정답을 얻기 보다 자신을 좀 더 인정할 수 있게 됐다. 질병 속에서 유동하는 우리의 아픈 몸은 자본주의사회가 요구하는 효율적이고 표준화된 몸과 전혀 맞지 않고, 그래서 종종 쓸모없는 존재로 규정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쓸모를 입증할 의지가 없다. 


질병을 어떻게 극복했다거나 질병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서사가 아니다. 아픈 몸에 대해 끊임없이 ‘해명'하길 요구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해명에 성공하거나 실패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아픈 몸들이 질병과 공생하는 고유한 삶에 관한 ‘사소한' 이야기이며, 아픈 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온몸으로 분투하며 해석한 이야기다.

질병은 우리 몸을 변화시켰고 고통을 주었고 삶을 뒤틀리게 만들었다. 우리는 오랜 세월 어떻게든 건강을 회복해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 헤맸고, 그 길을 가길 권장 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아픈 몸으로 어떻게 온전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새로운 지도를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아픈 몸을 차별하는 사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탐색하고, 아픈 몸들도 배제당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질문하면서 천천히 지도를 만들어보고 있다. 물론 완성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건강 중심 사회에서 아픈 몸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우리는 아직은 완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픈 몸으로 어떻게 삶을 살아낼지를 두고 함께 지도를 만드는 행위가 주는 안정감과 위로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우리는 이 작업을 통해 질병과 함께 사느라 고통스러웠던 시간과 경험이 쓸모없는 게 아님을 새삼 확인했다. 건강한 몸에 대한 선망과 완전한 회복에 대한 막연한 강박이 아니라, 지금 몸을 인정하고 아픈 몸으로 살아가기로 ‘선택'함으로써 불투명했던 삶이 오히려 선명해졌다.


질병이 우리 삶을 낚아채서 세차게 내동댕이치는 것 같지만, 사실 상당 부분 우리 삶을 뒤흔드는 것은 생의학적 질병이 아니라 질병에 대한 사회적 태도임을 점점 더 명확하게 보게 됐다. 그리고 질병의 사회구조적 측면을 파고들수록, 우리가 아플 수밖에 없는 노동조건, 성차별, 성폭력, 빈곤, 환경, 기후위기, 건강 중심 주의 등의 문제가 우리 몸에 스며 있음을 면밀히 확인하게 됐다. 내면화된 낙인의 허구성을 만나던 순간의 환희. ‘정말이지, 내가 잘못해서 아픈 게 아니었어!’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확인하며 세상 그 누구도 더 이상 아픈 것 때문에 또 다른 아픔을 얻지 않기를 더욱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